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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퀼트>퀼트의 역사 알아보기 2,3

by 나도여기있다 2016. 5. 29.

<퀼트>퀼트의 역사 알아보기 2

1620년 11월 19일, 영국으로 부터 청교도를 태운 메이플라워호는 65일 항해끝에 메사추세츠의 프리모스에 도착. 180톤의 메이플라워호는 102명이 겨우 탈 수 있는 작은배였다. 그들을 환영하는 사람은 없고, 집도 없는 신대륙 미국 땅에 알수 없는 위험과 함께 착륙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퀼트 문화도 함께...

심한 추위에 한것 움추려야 했던 겨울.... 아는 사람 없는 타지에서의 첫 겨울... 이주민들의 반은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병으로 죽어갔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유럽문화와는 다른 원시 대륙에서의 시간은 큰 고통이였을 것 같다. 하지만 이주민들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었고, 계절을 익히고, 시기별로 작물을 심고 수확하는 우수한 적응력을 발휘하게 된다.

남자도 여자도 아이들도 살기 위해 몸부림 치며 일을 해야 보다 낳은 삶을 위해 당장의 생활을 위해 자연환경을 최대한 이용하는 건설적이고 창의적인 사고 능력은 살기 우해 필수 조건이였다.

이들 이주민들은 추위를 막기 위해 조그만 천을 모아 퀼트를 만들어 창문 틈새로 부는 바람을 가고, 마른 풀과, 동물들의 털, 날개, 옥수수 털 등을 넣어 퀼트 이불과 매트를 만들어 침대에 사용하게 된다.

이처럼 아메리칸 퀼트는 생활하는데 꼭 필요한 중요한 필수 품으로 생겨난 강인한 의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퀼트>퀼트의 역사 알아보기 3

 

최초의 퀼트는 추위를 피하기 위한 방한용품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장식적인 디자인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따. 정해진 패턴도 디자인을 생각할수 있었을 턱이 없다. 조각 천을 가능한 여러 장 서로 연결 시켜 사용, 아마 남아 있는 조각 형태 그대로 불규칙하게 이어 붙여 이불 모양을 만들었다. 이것이 나중에 크레이지 퀼트라 불린다. 이런 형태의 퀼트는 이주민들이 모국으로부터 가져온 소중한 천을 이어 만든 작품이 아니였을까?

디자인을 즐길 여유는 없지만 이어 붙인 누비이불은 추위와 굶주린 타지생활에 활력을 주는 친근한 생활용품이 되었다. 신 대륙 미국 땅에는 그들이 유럽에서 가져온 퀼트 패티코트와 더불어 퀼트 문화가 유산으로 이어져 그들 생활 속에 깊숙히 뿌리를 내리게 된다. 이런 시간을 경험하면서 퀼트는 유럽의 생활 배경과는 전혀 다른 미국이라는 신 세계에서 새로운 패턴을 하나, 둘씩 만들어간다. 그 후 퀼트는 미국 역사와 더불어 발전하기 시작한다. 아메리칸퀼트의 발전사를 아는 것은 바로 미국 생활의 역사를 아는 것이고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채취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아메리칸 퀼트를 분류해 보면 몇 단계로 나누어 진다. 먼저, 단지 필요성에 의해 퀼트가 마들어졌던 식민지 시대, 그리고 인도와 영국에서 수입된 프린트와 스타일이 주종을 이루던 독립전쟁 시대, 서부로의 이동이 시작되면서 미국적 특징이 생겨나던 1850년 경의 서부개척 시대와 남부전생 시대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이후 1870년 경을 절정으로 한 독립 100년 시대는 산업혁명의 진행과 함께 퀼트가 자장 활발하게 만들어 졌던 시기이며,1930년대 경쟁공항 시대는 20세기에 들면서 한때 쇠퇴했던 퀼트가 다시 부활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잊혀져 갈 뻔했던 퀼트의 가치가 재 인식 되면서 새롱ㄴ 감각으로 창작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현대 퀼트의 시대라고 하겠다. 퀼트는 유럽에서도 오래 전부터 만들어 왔지만 미국처럼 모든 사람들이 평균5~6장씩 퀼트를 가지고 있을 만큼 보급적되지는 않았다. 한땀 한땀 손으로 이어 붙이는 퀼트, 그 속에는 절제와 애국심, 자비와 신앙을 존중했떤 초창기 미국인들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정신이 이어져 오늘날 독특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의 퀼트 문화가 꽃피게 된 것으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다.

 

다음에 계속...